2012/03/29 23:28

박범신의 '은교' 중에서. inspiration

지금 생각하면, 나는 서지우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지니고 나온 쌍꺼풀의 운명을 따라 살았다고 느낀다. 그의 쌍꺼풀은 단지 깊은 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허랑하고 범박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반역에 대해 알지 못했다. 말하자면 그는 평생 동안 오로지 주인이 주입해준 생각,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짐을 지고 걸어갈 뿐인 '낙타' 같은 존재였다. 니체가 말한바 '낙타의 시기'가 그에겐 영원했고, 따라서 자기반역을 통해 세계를 독자적으로 이해하는 '사자의 시기'는 그에게 도래하지 않았다. '쌍꺼풀'은 그리하여 육체에 깃든 그의 젊음을 시시각각 먹어치웠다. 그는 젊은 시절에도 '그놈의 쌍꺼풀' 때문에 이미 중년이거나 장년이었다. 평생 그는 허당을 짚고 걸어야 했다. 칼 크롤로우나 쟈크 오디베르띠를 죽을 때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당연했다. 시의 독자성에 대해서도. 그러므로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지닌 죄의 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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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되는 것을 일방적으로 믿는 건 위험한거야. 인식된 사물이 때로는 그 사물 자체와 얼마나 다른지 너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낱말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가 천차만별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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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의 '은교' 중에서.

덧글

  • 시내 2012/04/06 10:07 # 삭제 답글

    지현아 내가 한메일로 메일 보냈어!
  • 하니 2012/04/16 10:47 # 답글

    나도 한메일로 메일 보냈어! ㅋㅋ

    근데 저 첫번째 단락은 정말 무시무시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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